다음 글은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도서로 유명한 강원국 작가의 <나는 말하듯이 쓴다> 에 서 발췌한 글이다.
쇠사슬에 매인 코끼리
주목이 재미없는 이유는, 남이 보라고 하는 것과 자기가 보고 싶은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갈등이 생긴다. 누구에게나 신념이나 가치관이 있고, 자기 나름의 문제 해결 방식과 고유한 행동 방식이 있다. 이를 자신이 보는 방향, 즉'관점'이라고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조직이나 상사, 부모의 것과 다른데, 그것을 거부하지 못한다면 재미있을 수 없다.
자기 생각과 다른 것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조화도 주목이 재미없는 이유다. 서로 다른 것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불협화은은 불가피한데, 상대가 일방적이기까지 하다면 더욱 고통스럽다. 직장에서 상사가 "이렇게 고쳐라", "다시 써라",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라고 나무라면 '자기는 정답 알아?', '자기 생각이 정답이야?'라는 생각에 속에서 열불이 난다. 하지만 맞춰가야 한다. 상사가 요구하는 수준에 이를 때 까지는 압밥과 불화가 계속된다. 이런 부조화를 조화로운 상태로, 상사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바꿔가는 과정이 직장에서의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사의 생각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상사도 처음에는 답을 모른다. 부하가 써 온 초안을 보다가 새로운 생각이 난다. 그것은 처음 지시할 때 보다 발전된 생각이거나 다른 생각이다. 처음 말한 것과 다른 내용을 불러주면서 고치라고 한다. 이렇게 상사와 함께 실마리를 더듬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직장에서의 일이다.
이는 바로 윗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층층이 위로 올라가면서 좌충우돌한다. 팀장 생각 다르고, 부서장 생각 다르고, 임원 생각 다르다. 이처럼 일관되지 않은 생각을 정리하며 일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게 직장에서의 글쓰기다. 당하는 사람은 기분 좋을 리 없다. '왜 이리 오락가락하는 거야?',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는 거지?'하는 생각에, 결국 목표는 "됐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된다.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사의 수준이 80점이면 결과물이 80점에 이르렀을 때 생각이 멈춘다. 90점, 100점, 1,000점을 넘보지 않는다. 몸집이 아무리 커도 다리에 묶인 쇠사슬의 길이만큼만 움직이는 코끼리 같다. 상사가 가리키는 지점만 보다가 그곳에 이르면 일을 멈춘다. 더는 없다. 처음에는 도망가려고 발버둥 쳤던 코끼리가 그것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쇠사슬을 끊을 힘이 생겨도 도망가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조직과 상사다. 상사는 자기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한다. 기껏해야 본전치기다. 조직도 상사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다. 상사가 자기 수준 이상의 생각을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심하게 가로막는 상사일수록 조직에서는 더 능력있다고 인정받는다. 상사가 보는 방향과 다른 곳을 보는 사람이 있어야 상사를 보완할 수 있고, 상사가 놓친 것을 챙길 수 있으며, 서로 다른 것들을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부하는'보는 수준'에 따라 다섯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상사가 말한 것만 듣고 그대로 쓰는 사람이다. 아예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것도 훌륭하다. 둘째, 상사가 말한 것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사람이다. 성실하다는 칭찬을 듣는다. 셋째, 상사가 말한 것의 이면, 즉 의중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능력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넷째, 상사의 말과 겨루고 자기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합의안을 도출해내는 사람이다. 조직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다. 다섯째, 상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상사의 말을 받아 적지 않는다. 평소에 관찰을 즐기고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넷째 유형이 조직에서 바람직하다. 마지막 유형은, 본인은 즐겁지만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고 오래지않아 조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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